키워드로 보는 정약용 인문학 콘서트

정약용 선생과 남양주


정약용 선생은 1762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당시 광주부 초부면 마현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마재마을로 불리는 조안면 능내리는 그가 15세에 혼인하여 한양으로 떠나기 전까지 어린시절을 보내고 학문을 쌓은 고향입니다.
또, 1818년 유배지에서 돌아와 돌아가시기 전까지 18년 동안 삶과 저술을 기록하고 말년의 여생을 보낸 곳입니다.
그리고, 직접 묫자리를 정하여 집 뒷동산에 묻히셨습니다.
남양주 출신 대학자 정약용 선생의 실사구시와 인문정신을 널리 알리고 계승하고자 정약용 인문학 콘서트를 개최합니다.

청소년 인문학 경진대회


정약용 정신의 핵심가치는 ‘미래지향성’입니다.
그는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여 다양한 분야의 저술을 통해 개혁방안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을 비롯하여 정약용 선생이 양성한 제자들이 그의 수많은 저술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고 제자들을 양성한 정약용 선생의 마음을 새기며,
미래 세대 청소년이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는 인문학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수상자 18명 선정


정약용 선생과 ‘18’이라는 숫자는 연관성이 아주 깊습니다
그 의미를 담아 총 18명의 인원에게 시상합니다.

탄 생

1762년 8월 5일(음6.16.), 18세기에 태어남

여 유 당

1800년(정조 24), 선생은 모든 관직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 은신하였으며 이 시기 “여유與猶”라는 당호를 지음

정 조

정약용 선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께서 1800년에 죽음을 맞이함

유 배 생 활

1801년부터 1818년까지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였으며, 이 시기 1표 2서(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를 비롯한 수많은 저서를 저술하고 실학을 집대성함

생 의 마 감해배 후 18년 동안 고향에서 저술을 보완하고 정리한 후 1836년 75세로 생을 마감함

9월 발표대회 및 시상식 개최


정약용 선생은 1818년 9월 보름(음력)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이후 「목민심서」를 비롯한 저술을 수정‧보완하고 당대 석학들과 학문 교류도 활발히 하셨습니다.
이를 기념하여 남양주시는 매년 9월 ‘정약용문화제’를 개최합니다. 
9월 정약용유적지에서 펼쳐지는 인문학 축제의 장에서, 시상식과 축하공연, 수상자들의 최종 발표회로 이루어진 정약용 인문학 콘서트를 개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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